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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위안부할머니의 책이야기

from 영화ː공연 2008/09/17 09:49

매주 수요일이면 할머니들이 서울 시내 중학동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모인다고 합니다.
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있기 때문이죠. 지난 10일, 830차 수요집회에는 일본 고베
여학원 대학교, 와세다 대학교 등 일본 대학생들이 함께 참여 하였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였던 여러단체와 피해 할머니들의 노력의 결실이 가해 당사자인
일본에도 전해진 셈인데요~
지난 8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담은 네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일본군 '위안부' 김순악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김선님씨가 기록한 책으로, 1997년 출범한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펴냈습니다.

이로써 '훈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할머니들의 네번째
이야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귀한 책을 블로거
JK님이 선물로 보내주셨어요.
뱃살이 임신5개월만한데 맨날 배고파~ 라는 투정(?)에
마음의 살 먼저 찌우라는 JK님의 깊은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받는 순간 감사했고, 읽는동안 내내 감사했습니다.

1.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 네번째
위안부할머니의 기록

 
김순악 할머니
.
1944년, 열여섯 어린 나이에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대구
공장에 취직하려 길을 나섰으나,
중국 허베이성에
위치한 장가구라는 도시에서 일본군의 성적 도구가 되어
버린 분(ㅠㅠ)


1
년 여 동안 매일 10~20명의 일본군을 상대하고,
주말에는 30~40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위안부의 삶
.
해방된 이후에도 할머니는 결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

아버지도, 국가도 그녀에게는 결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유곽을 다시 떠돌며 큰아들을 낳았고
, 생계를 위해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다시 양키물건장사, 달러장사 등을 하다 혼혈아인 둘째아들을 낳았다.
여성 혼자서 두 아들을 부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도 그시대에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니의 멍든 가슴을 달래준 것은 오로지 술과 담배였을 뿐.

"남 것 손 안대고, 남한테 해코지 안하고 내 몸뚱이로 이제껏
살아왔다 말이다! 그런데도..
가슴에서 불이 올라 온다
말이다. 이런 불이
!"

할머니의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불덩이는 할머니의 삶을
항상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 책후반부에 소개된 김순악할머니의 작품

70
평생을 고통 속에 지내오시던 김순악 할머니는 일흔이 되시는 1977년 생활보호대상자와 정부 보조금 수급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되었다.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56년이 지난 후에야 할머니는 정부의 '울타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ㅜㅜ)


김선님 씨는 인터뷰 내내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라는 할머니의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가슴의 응어리를 평생동안 껴안고 지냈던 삶의 무게를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탄식일 것이다.

 


2.
여전히 위안부문제는 진행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실체적 자료들이 그 분들의 증언을
제외한다면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순악 할머니처럼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분들의 연세가
너무 많아서 증언에 대한 기록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
이며, 한일관계 등 동북아를 둘러싼 외교적 문제이며, 그 피해자들이
여전히 힘든 삶을 지탱해가고 있는 우리 현실의 문제이다.

외교적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방관자적인 정부에 대하여 할머니들은 여전히 외친다.
망언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외친다. 그 분들의 외침을 우리
사회는 너무 늦게 듣기 시작했으며, 일본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지난 2000년에 김순악 할머니는 '대상자결정통지서'를 받았다.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라는 법률에 의해, 할머니는 역사적 피해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분들이 겪었던 오랜 시간의 고통에 비한다면 너무 늦은 '결정'이 아닐 수 없다(ㅠㅠ)


▼ 동영상은 JK님송현주 간사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책을 읽는동안 가슴이 참 먹먹~했습니다. 할머니 가슴의 불을 10분의1이라도 짐작할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우리의 아픈역사,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왕 발걸음 하셨으면 인사라도 나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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